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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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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미술연구소_설문조사] 2010년대 한국미술의 세대교체가 눈에 보인다

관리자


2010년대 한국 미술권력의 교체 예견
김달진미술연구소10주년 기념, '2000년 이후 한국미술현장진단' 설문조사

김달진미술연구소가 이번 설문조사배경과 그 과정을 김달진관장이 설명하고 있다.

김달진미술연구소는 2001년 12월 문을 열었고, 2002년 1월에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10주년을 맞춰 2000년 이후 한국미술의 흐름과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전문가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설문조사의 배경과 과정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가 12월 26일 이 연구소 미술정보센터에서 열렸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관장은 "8개의 문항을 100명에게 의뢰했는데 이중 53명이 답변이 왔고, 조사기간은 2011년 12월 5일부터 14일까지 이메일과 전화 통화를 했으며 방식은 의뢰인 1명당 문항별 3표 중복표기를 받아 합산됐다"고 설명한다.


만프레드 레베 I '음악전시회-전자텔레비전' 24×30cm 1963 국립현대미술관소장. 동양에서 온 무명작가 백남준은 서양 전위작가들을 놀라게 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설문1]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최고 작가는?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최고 작가는 누구인가?
1위 백남준(38명), 2위 김환기(22명), 3위 이우환(21명) 4위박수근(17명), 5위 이중섭(3명), 5위 박생광(3명), 5위 오윤(3명), 5위 권진규(3명), 5위 박이소(3명)의 순이다.
생존 작가 중에는 이우환, 김수자, 서도호가 들어갔다. 백남준, 김환기, 이우환, 박수근의 순위는 납득이 가나 유영국, 윤명로, 김종학, 정상화, 남관 등 근대작가 등이 저조한 것은 2010년대 한국미술권력의 세대교체가 예견된다. 이제 사후에 재평가 받는 작가로는 박생광, 오윤, 박이소 등을 들 수 있다.

차학경이 쓴 '딕테(Dictee 받아쓰기)'라는 책 표지. 차학경은 글쓰기로 유명하다. 그의 책은 아시안 아메리카 문학(Asian American literature)의 필수항목으로 꼽힌다 ⓒ 차학경

[설문2] 한국 현대작가 중 재조명해야 하는 작가는?

한국 현대미술작가 중 재조명해야 하는 작가를 묻는 설문에서는 1위 차학경(18명), 2위 김구림(14명), 2위 박현기(14명) 3위 전창승(7명), 4위 이승택(6명) 순이다.

이 설문에서 뜻밖에도 차학경(1951-1982) 작가가 1위에 올랐다. 그녀는 부산출생으로 11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버클리대학과 파리에서 문학과 미술을 전공하고 문학, 개념미술. 퍼포먼스, 신체미술, 비디오아트 등 전방위 작가였다 '기관(Apparatus)과 '받아쓰기(Dictee)' 등 저서를 남겼고 페미니스트로 31살에 요절했다. 92년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김구림 I 'S-01' 혼합재료 28×46.5cm 2001

그리고 2위로는 김구림(1936-) 한국 실험미술의 대부로 50년대부터 앵포르멜, 60년대 서정추상 이후 매체실험과 오브제작업을 일찍 시작했고 전통회화의 방법론을 거부와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던져왔다. 1991년 뉴욕에서 백남준과 2인전을 열기도 했다. 70-80년대의 개념예술을 거쳐 강렬한 에로티시즘과 음양사상을 기초로 조화와 통합의 세계를 모색했다.
또 2위로는 박현기(朴炫基 1942-2000) 그는 토종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동양의 정신문화를 미니멀한 표현방식으로 단순화했고 명상적 영상을 선보여 비디오아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3위로는 정찬승(1942-1994)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인물로 영원한 실험 작가로 불린다. 한국 행위예술과 해프닝아트의 선구자다. 1967년 12월 '청년작가연립전'에 이어 68년 '투명풍선과 누드' 69년 '백남준 재구성' 등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후 미국에서 정크아트를 작품을 발표했으나 안타깝게 52세로 타계했다. 그의 회고전 하나 없었다는 건 한국미술사의 불행이다.

2009년 '백남준예술상'을 받고 감격해 하는 이승택작가

4위로는 이승택(1932-) 이분과는 몇 번 인터뷰도 해 봤지만 일관되게 기존주류미술에 반하는 도전과 반예술의 정신을 고수하고 있다. 설치미술에서 조각에서는 금기를 깨고 비조각과 사회의 통념을 전복하는 작업과 대지예술 같은 설치미술 한국적인 것의 현대화를 추구했다 2009년에는 '백남준예술상'을 받았다.


2010년 강남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地水火風전'에 인터뷰하는 김수자작가

[설문3] 2000년 이후 활동이 두드러진 국내외 생존작가는?
2000년 이후 두드러진 국내외 생존 작가로는 1위가 김수자(19명), 2위가 서도호(18명), 3위가 이우환(13명), 4위가 정연두(12명), 5위가 이불(9명), 이용백(9명)이 뽑혔다.
김수자는 백남준 이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개념미술가다. '보따리'라는 개념을 세계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폭넓은 유연성과 여성적 포용성이 예술로 승화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보자기로 싸매는 정신 살림의 철학, 예컨대 찢어진 것을 바늘로 꿰매고 죽은 것을 살려내는 살림의 정신도 담겨 있다.
그는 연민보따리 싸들고 전 세계 유목하며 중생의 고통을 '보고(觀)' 중생이 신음소리를 '듣고(音)'하는 관음보살 혹은 자비와 연민의 어머니인 성모마리아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국내외적으로 맹활약하는 작가로 이외에 서용선(6명)과 양혜규(6명), 배병우(5명), 강익중(4명), 전광영(4명) 등이 추천되었다.


2011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박이소 드로잉전 작품과 그의 사진. 그는 당신 문화번역가로 당대 후배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으나 말년에 단식 포퍼먼스 등 기행으로 45세에 운명했다 ⓒ 아트선재센터


[설문4] 2000년 이후 작고한 미술인 중 한국미술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람은?
* 여기서 미술인은 (미술가, 화상, 이론가, 컬렉터, 행정가 등 모두 포함)

이 설문에는 1위 백남준(미술가:45명), 2위 이경성(평론가:36명), 3위 박이소(미술가:23명), 4위 김창실(화상:20명), 5위 이원일(큐레이터:8명) 등이다. 백남준(1932-2006)과 박이소(1957-2004)는 미술가로는 최고작가로 소개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이경성(1919-2009)은 미술평론가로 제1호 홍익대교수로 그 역할이 컸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백남준의 '다다익선'도 유치했다. 김창실(1935-2011) 선화랑 대표는 <선미술> 등을 발간했고, 51세에 타계한 독립큐레이터 이원일(1960-2011)은 왕성한 국제적 활동으로 한국미술의 민간대사 역할도 톡톡히 했다.


2009년 기무사에서 열린 이용백작가 앤젤솔저(Angel-Soldier) 퍼포먼스 중에서

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작가 입구 이용백작가의 설치작품. 분단의 피의 역사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붉은 꽃의 군복뿐인가 ⓒ 이용백



[설문5] 1965년 생 이후 국내외적으로 활동이 가장 기대되는 작가는?

만45세 이하 1965년 이후 출생한 작가 중 향후 국내외적으로 활동이 가장 기대되는 작가로는 1위 정연두(17명), 2위 박찬경(11명), 3위 양혜규(9명), 4위 이용백(9명), 5위 전준호(6명) 등이 뽑혔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와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초대전을 가진 후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정연두와 다큐멘터리 영상 사진 설치작가 박찬경, 그리고 뉴욕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작가 양혜규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올해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참가한 이용백, 그는 4대강국 속에 생존하며 살아가는 한국은 사실 휴전국이다. 그 속에 군사문화가 있다. 그런 와중에 꽃의 천사를 볼 수 있다니 놀랍다. 상처와 고통도 극에 달하면 구원이 되는 역설적 원리를 예술화했다.
끝으로 여러 장르에 독특한 아이러니를 담은 전준호작가도 많은 기대가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10 고려불화대전' 전시장 풍경

[설문6] 2000년 이후 가장 기획력이 돋보인 전시는?
2000년 이후 가장 기획력이 돋보인 전시는 물론 전시가 최근의 것과 삼성 리움 미술관의 것이 치우친 면도 없지 않다. 역시 1위는 2010년에 열린 고려불화대전(국립중앙박물관:17명)이다. 정말 동아시아에 흩어진 고려불화를 한꺼번에 다 볼 수 있어 전율의 감동의 도가니였다. 이를 못 봤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2위로는 한국미술100년<1부>(국립현대미술관 2005:15명), 3위로 2002년 성완경감독의 광주비엔날레 '멈춤'(2002:7명), 4위로 올해 열린 '조선화원대전'(삼성미술관리움 2011:6명) 5위로 2010년 이탈리아 출신의 37세 젊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감독의 '광주비엔날레 만인보' 2010:5명), '미디어시티 서울'(윤진섭 2004:5명), '코리안 랩소디'(삼성미술관리움 2011:5명) 그리고 6위 '아트스펙트럼'(호암갤러리 2003:4명), 7위 '부산비엔날레' 아주마야 다카시 2010: 3명) 등이 선정되었다.


2007년 봄 대안공간루프에서 열린 장지아의 '침묵의 계율(Omerta)' 전시장면. 요즘 대안공간들이 시들해지고 있다 ⓒ 대안공간루프

[설문7] 2000년 이후 한국미술 7대 변화와 이슈는?

2000년 이후 한국미술 7대 변화와 이슈는 뭔가라는 설문에는 1) 미술시장의 영향력 확대 2) 중국 현대미술의 부상 3) 미술비평의 침체 4) 대안공간의 출현과 활성화 5)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확장 6) 박수근 이중섭 위작 시비논란 7) 신정아 학력 위조 구속이 나왔다.
한중일 미술전쟁시대에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역시 중국미술이고 미술권력의 역학관계 속에서 전문적 비평이 어려운 상황이고 박수근의 <빨래터> 등 위작시비는 법적으로까지 비화될 정도였고 한국미술품가격이 청전부지로 올랐다는 반증도 된다. '김 과장의 그림쇼핑' 등과 같이 중산층도 작품을 사는 풍토가 시급하다.
대안공안을 최근에 점점 시들해지는 모양새다. 반면 지방자치로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많이 생겼으니 내실을 기해야 할 것이다. 옥션과 갤러리의 분리는 필수적이다. 모든 활동이 시장논리에 끌리게 되고 비평은 침체되고 미술담론 생산은 빈곤해진다 작가, 갤러리, 컬렉터 등 미술인과 미술관련 분야에서 정체성 확보가 또한 시급하다.


한국미술정보센터 3층 자료열람실

[설문8] 한국미술 극복해야 할 7대 과제는?

한국미술 7대 과제는 1) 국가적 지원과 법적제도 보완 2) 미술시장의 투명화와 양도소득세 해결 3) 미술 아카이브의 개선과 해외 홍보 4) 미술관의 기능 전문화 5) 미술 컬렉터의 다각화 6) 미술비평의 문화적 역량 강화 7) 중고교 미술교육 강화, 미술교육개혁을 들었다. 김달진 관장의 개인적 공로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한국미술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가 정책적으로 제도 보완해야 한다.
모든 미술의 기본과 경쟁력은 기초자료와 풍부한 정보 그리고 아카이브 인프라구축도 언급되었다 한국작가도록의 영어판이 ISDN 등록이 안 돼 뉴욕현대미술관이나 미국주요도서관에 설치가 되지 않고 있다. <프랑스현대미술사전>에 보면 일본작가는 40여명이 소개되나 한국작가는 딱 2명 백남준과 이우환만 소개된다. 그리고 미술관장의 선출과정에서 투명화와 전문성, 미술비평의 문화적 역량 등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 청년작가연립전의 '무'동인 과 '신전'동인, 오광수 각본으로 1967.12.14. 4:00-4:40, 중앙공보관 화랑 제2전시실에서 시연

[결론] 21세기는 문화예술이 시대정신

21세기는 문화예술이 정치경제를 좌우하는 시대다. 토건과 금융이 위주인 경제에서 문화와 예술이 위주가 되는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꿔야 생존할 수 있다. 창의적 리더십과 디자인 마인드가 대중화가 필요하다.
한중일 문화전쟁에서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을 어떻게 운영하며 한국작가작품구매와 세금문제 등 여러 과제가 남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런 조사는 한국미술을 사랑하는 자발적인 마음에서 나온 민간의 노력이다. 이를 높이 평가하면서 정례화 하는 방안과 문항의 질과 내용의 객관성을 높이는 방안도 연구되리라 믿는다.


[설문 응해주신 분들(가나다 순)]

강선학(미술평론가), 강승완(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팀장), 고충환(미술평론가), 김노암(아트스페이스휴대표), 김미경(강남대교수), 김병수(미술평론가), 김복영(미술평론가), 김상철(미술평론가), 김선정(한국종합예술학교수), 김성희(홍익대 미술대학원교수), 김영석(월간 아트프라이스대표), 김영순(미술평론가), 김영재(미술평론가), 김영호(중앙대교수), 김종근(아트앤 콜렉터 발행인), 김종길(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김지연(학고재갤러리 기획실장), 김찬동(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책임심의위원), 김학량(동덕여대교수), 김형숙(서울대교수), 김홍희(미술평론가),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박영택(경기대교수), 박천남(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반이정(미술평론가), 변종필(미술평론가), 서성록(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송미숙(성신여대 명예교수), 신항섭(미술평론가), 오광수(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오세권(대진대교수), 유진상(계원디자인예술대교수), 윤난지(이화여대교수), 윤우학(충북대교수),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이대범(미술평론가),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은주(독립큐레이터), 임창섭(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장동광(독립큐레이터), 정영숙(경희대 겸임교수), 정용도(미술평론가), 정준모(미술평론가), 조광석(경기대교수), 조선령(독립큐레이터), 조은정(한남대 겸임교수), 최금수(네오아트닷컴대표), 최병식(경희대교수), 최 열(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 최은주(국립현대미술관 사업개발팀장), 하계훈(단국대 대학원교수), 홍경한(월간 아티클 편집위원), 황록주(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김달진미술연구소


김달진미술연구소 및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관장 소개

김달진(1955-)씨는 충북 옥천 생으로 미술계에서 '걸어 다니는 미술사전'으로 불린다. 그의 현장밀착형 수집과 미술연구는 가히 놀랄만하다. 누구 알아주든 말든 자신의 길을 걷었다. 한 개인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다. 국가적 문화정책보다 힘이 더 세다. 미술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에게 물으면 된다. 중학교 때부터 수집을 시작한 그의 열정은 40여년 만에 필생의 소망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열었고 박물관이라고 해야 자신의 이름을 딴 김달진미술연구소는 서울 비좁은 통의동에서 시작되었고 지금은
4층 건물 한국미술정보센터와 함께 창전동시대를 맞고 있다.

이 정보센터 열람시간은 평일 10시-18시 (동절 17시) 토요일 10시-14시이고 일요일은 휴간이다. 2층 전시 세미나 자료검색 정기간행물 기관지 신문 등 3층 복사 스캔미술단행본 도록, 대학원논문, 전집, 사전, DVD 등등 보유하고 있다. 이 건물의 10억의 보증금을 떠안고 있는 형편인데 지금은 임차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전세보증금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받고 있다. 2002년 1월에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하지 10년 되었다.

그는 미술이 좋아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전시전문 월간지 '전시계'에 보조기자로 입사한 그는 작고작가 인명록 제작 등 자신의 특기를 하나둘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의 성실함과 꼼꼼함을 눈여겨본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주선으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수집 및 분류담당자로 경력을 쌓았다. 서울산업대 금속공예과도 마쳤다. 또 중앙대대학원에서 문예예술학과정도 밟았다. '바로 보는 한국의 현대미술(발언)' 등 저서와 50여 편의 글과 자료도 공개하고 대학에서 강연도 하고 있다.

김달진미술연구소[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www.daljinbook.com
서울 마포구 창전동 6-4 별관 02)730-6216 www.daljin.com 홍대정문에서 산울림극장 방향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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